요새는 근 몇년간 가장 정신적으로 피로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연의 충격과 상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무환경이 무척 신경질적으로 변한 탓이 가장 클 것이다. 이래서 직장 상사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근데 이건 내가 고른 직장도 아니고 십라.)
그래서 그동안 나는 참 복받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투쟁의 역사였던 고등학교를 지난 후 대학 교수와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자퇴한 역사를 제외하면 내가 다니는 학교며 직장은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10만원을 떼어먹은 최부장님도 뭐... 좋은 편이라고 칩니다.)
잠들기 전 한숨과 함께 내일을 걱정하며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하느님. 제가 비록 교회는 좀 안다니지만 소원 좀 들어주세요. 내일 하루만 좀 아파서 결석 하게 해주세요. 불순한 의도 때문인지 기도는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불운한건 이제는 아파도 결석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는 조금 더 먹었고 상황은 조금 더 나빠졌다. 쌉쌀하고 찐득찐득하게 인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 때, 상사가 히스테릭하게 나를 공격할 때,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사과하고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때,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눈물을 꺽꺽 먹을 때, 이제는 기도 대신 '후, 사는게 원래 그렇지' 라고 중얼거린다.
생각해보니 내가 슈퍼키드의 공연을 보다가 별안간 눈물이 그렁그렁 했던 이유도 그렇다. 체념과 굴복의 메시지이면서도 자존심이 담긴 냉소적 어투. 사는게 그렇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됩니다. 가식은 기본입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두주먹 불끈쥐고 잘 살고 볼 일입니다. 왠지 울분과 통쾌함이 교차했다. 날 이상한 눈으로 보던 여고생, 오빠 나이쯤 되면 알게 될거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벌써 화장실을 세번 다녀왔고 열번쯤 이 부정적인, 그러나 힘이 담긴 주문을 외웠다. 시발. 사는게 그렇습니다.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제대하고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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