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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ANALOGUE - [00.Prologue]

"4004번 나와."

  교도관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4004번이라 불리운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하기만 했다. 교도관은 4004번의 그런 모습이 무척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4004번이 움직일 기미가 없어 보이자 교도관은 곤봉을  꺼내 신경질적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4004번 나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옆방에 있던 죄수 몇 명이  힐끔거렸다. 하지만 4004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징그러운 놈.... 교도관은 굳은 표정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4004호. 번호도 번호지만 이 자는 교도관들에게 여러모로 악명이 높았다.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무차별로 사람을 살해하고 (사실은 일방적 도륙이라  해야 옳지만) 홀연히 사라지기를 수십회.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여러 나라의 특수경찰들까지 동원되게 했던 남자. 간신히 체포를 했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고,  간간히 난동을 부리며 맨손으로 무장한 교도관들을 황천길로 보내 이미 블랙리스트 0순위에 오른 남자인 것이다.
  4004호가 갑자기 스윽하고 일어났다. 교도관은 순간 움찔했지만, 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뒤에 서 있는 부하 교도관들에게 눈짓을 했다. 부하 교도관  둘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다가가 4004호의 팔다리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수갑을 채우고는 양 팔을 굳게 봉쇄한 채로 어디론가 데려갔다. 4004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교도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젠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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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4호의 사형은 매우 이례적으로 집행되었다.  그의 최후는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방송 되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그 때문에 교수형이 아닌 총살로 집행되었다. 일부 국가의  위성이나 케이블을 통해서도 방송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그가 일으킨 사건의 파문은 크고, 사람들의 불안감도 컸다.
  사형장에 모습을 드러낸 4004호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마치  자신의 당연한 할 일을 하는 것과도 같은 표정. 눈을 가린 채 자신의 최후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조준!"

  다섯 개의 총구가 그를 향해 조준되었다.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 어떻게 어떤 소동을 부릴지 장담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자 집행관에게 있어 그 짧은 시간은 한없이 길기만 했다.

  "발사!"

  타다당-.

  다섯 개의 총구에서 일시에 요란한 소리가 뿜어져 나오며, 4004호의 삶에 막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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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고 어두운 방에 두 남자가 있다. 그리 밝지 않은  전등 하나가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을 비추고, 두 남자는 그 어둠 밖에서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소매로 보아 양복을 입었을  듯한 팔 하나가 빛 속으로 스윽 들어와 테이블의 문서를 집어들었다.

  "4004호. 골 때리는 놈이군.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고, 출신도 모르고,  지문감식 결과도 불명인 아주 골 때리는 새끼야."
  "......."

  대답은 날아오지 않는다.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양복을 입은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리고 상대편의 멱살을 잡아 코앞으로 잡아끌었다. 전등에 드러난 상대편의 얼굴은, 총살되었어야 할 4004호다. 양복 입은 사내의 찢어진 눈이 파르르 떨렸다. 꼭 다문 입술이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잘 들어라 4004호. 상부의 지시가 있긴 했지만 난 인정하지 않는다. 너 같은 개새끼를 왜 살려내서 이런 일을 시켜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듣고 있냐!! 이 개 같은 자식아!!"
  "......."
  "우리 마누라는 머리가 세로로 쪼개졌고, 우리  딸내미는 머리만 찾아내 가지고는 시체더미에서 몸뚱이를 찾느라 애먹었지. 딸내미 생일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가던 길이었다지?"
  "......."

  4004호는 말 없이 시선을 떨궜다. 양복의 사내는 이를 악물고서는 쥐고 있던 멱살을 거칠게 밀어내며 놓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는,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간다.

  "4004호. 지금부터 너는 미래로 가서 간단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귀중한 문화유산이 개인의 손에 넘어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걸 네가 가지고 미래로 가 전해주면 되는 간단한 임무이다."
  "미래...?"

  매우 힘이 없는 목소리. 4004호의  목소리는 중간정도 톤의 목소리였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는 너무도 가냘프고 구슬프게 들렸다.

  "국가에서 비밀리에 개발한 타임머신이다. 다만, 시간을 인위적으로 느리게 해  미래로 보내는 것만이 가능하다. 미래로 간다면 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서류를 완비해 놓도록 하겠다."
  "......거절한다면?"
  "다시 사형될 것이다."
  "......그럼, 죽여줘."

  그 말을 들은 사내의 한쪽 눈썹이 꿈틀 하더니, 퍼억- 하고 그의  얼굴에 세찬 주먹을 날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고개가 완전히 돌아간 4004호의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러고 싶지만, 내 권한도 아니고, 너에겐 선택할 자격조차 없다."

  말을 마친 사내는 서류를 탁탁하고  정리해서는 방을 나갔다. 4004호는  힘없이 눈동자만 굴려 사내의 뒷모습을 쫓다가, 그가 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온 빛에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가 문을 닫고 나간 후에, 눈을 감으며 작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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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시간여행의 반쪽을 이뤄낸 기술. 그  원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가 되면 될수록 그 물체에 적용되는 시간은 느려진다' 라는 것을 기술적으로 구현해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구현해낸 타임머신은  국가에서 극비리에 여러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청부살인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유능한  인재를 미래로 빼돌리는 것부터, 불치병에 걸린 주요인사나 멸종위기의 동물, 악질 수집가가 눈독을 들이는 세계적 문화유산을 미래로 보내는 것 까지 실로 다양한 목적이었다.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지원자나 특별히 선출된 인원에게 맡겨지고, 그 대가로 안정된 새 인생을 마련해 주는 식이 되곤 했다.

  "이해할 수 없군. 자네 같은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건."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열심히 타이핑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한참동안 열심히 타이핑을 해 뭔가를 입력한 남자는 피식 웃으며 4004호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크게 미소지어 보이며 씨이익- 웃었지만 4004호에겐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어 곧 난감한 표정이 된다.

  "여기저기서 미움만 받는 사람이, 그럴만한 짓도 골라서 하는구먼."
  "......."
  "뭐 그렇게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는 거야. 좀 웃어 보라구. 어휴, 그만두세. 그만 둬."

  남자는 혼자서 실컷 떠들며 주머니에서 주사위를 꺼내서 손가락으로 탁탁탁 튀겨본다.

  "별로 좋은 세상은 아니었지만,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미래를 만나거든 안부나 전해 줘."

  재미있는 말투로 친근한 인사를 하며 4004호의 목에 주사를  찔러 넣었다. 4004호는 아픈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다가 맥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는 그렇게, 이 세상과의 안녕을 고했다.


덧글 - 고등학교때 쓴 글. 인과관계가 부족하고 도저히 본편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어서 프롤로그만 쓰고 말았다.